1993년에 입단하였다. 현역 시절 선동열과의 통산 대결 전적 2승 1무로 선동열의 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3] 부상으로 인해 현역에서 일찍 은퇴했다. 통산 53승 71패, 16세이브,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
은퇴 후 주위의 권유로 대만 프로 야구에 도전했지만 6개월 동안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복귀했다. 귀국 후 친형이 운영하는 일식집에서 일했으나, 교통 사고를 당한 후 지도자로 전향해 1998년에 분당중앙고등학교의 야구부 감독으로 활동했다.[4]2007년에 당시 두산 베어스 감독이었던 김경문의 부름을 받아 친정 팀 코치로 복귀했고, 2011년에는 투수 노경은, 김창훈의 부활에 도움을 주는 등 소통 능력을 인정받았다.[5]2011년10월 9일두산 베어스와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의 조건으로 감독 계약을 체결했다.[6][7]2012년에 두산 베어스의 제 8대 감독으로 취임해 정규 리그 3위를 기록했다. 취임 각오는 '소통하는 팀', '깨끗한 팀', '기존 팀 컬러를 이어가는 팀' 등이었다. 2012년 시즌 전 정명원을 영입해 노경은, 이용찬을 성장시켜 투수 조련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감독 첫 해인 2012년 시즌에 타자 기용 및 운용에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투수 교체 등 작전을 내려 비난을 많이 받았다. 또한 '삼진을 당하지 않으면 타율이 2푼 올라간다', '2루타가 홈런보다 좋다'라는 타격 이론도 비판을 받았다. 팀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윤석민밖에 없었고 규정 타석을 채워 3할을 친 선수가 없었다. 2013년 시즌 전 당시 수석코치였던 이토 쓰토무가 지바 롯데 마린스의 감독으로 취임하고 배터리 코치였던 고마키 유이치가 팀을 떠나 수석코치는 황병일, 배터리코치는 강성우, 2군 감독은 송일수를 영입했다. 김민호 등 3명을 내보내고 투수코치 가득염, 3루/수비코치는 조원우 등 총 9명의 코치를 영입했다. 시즌 초반을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애매한 투수 운용으로 5월까지 4위에 머물렀고, 6월에 6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유희관, 이종욱, 김현수, 김재호 등의 활약해 리그 팀 타율 1위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을 4위로 마감했고, 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3승 4패를 기록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3승 1패로 우세한 상황에서 내리 3연패를 당해 승부사 기질 부족이라는 이유로 프런트와 마찰을 크게 빚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8][9] 후임으로는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송일수가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