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야족
모리야족(산스크리트어: मोरिय, 팔리어: Moriya)은 철기 시대에 존재가 입증된 남아시아 북동부의 고대 인도아리아인 부족이었다. 모리야족은 현재 모리야 공화국이라고 하는 가나상가(귀족 과두제 공화국)로 조직되었다.[1] [2] 위치모리야족은 아노마강 또는 라프티강에 의해 분리된 코살라의 북동쪽에 살았다. 모리야족의 서쪽 이웃은 콜리야족, 동쪽 이웃으로는 말라족이 있었으며,[2] 사라유강은 그들의 남쪽 경계였다.[1] 모리야족의 수도는 핍팔리바나였으며 서기 7세기 중국 순례자 현장은 냐그로바다나라는 이름으로 언급했다.[1] [2] [3] 이름모리야족은 공작이 그들의 토템이었기 때문에 원래 모라(공작)에서 이름을 얻었다.[1] [2] [3] [4] 역사이웃에 있는 다른 공화파 부족과 마찬가지로 모리야는 대마가다 문화권의 동부 갠지스 평야에 있는 인도아리아계 부족이었다.[5] [6] 붓다가 입적한 후, 모리야족은 그가 세상을 떠나 화장한 영토인 쿠시나가르의 말라족으로부터 그의 유물 일부를 요구했다.[2] [3] [7] 모리야족은 부처의 유해에서 나온 재를 받아 그들의 수도핍팔리바나에 있는 스투파 안에 봉안했다.[1] [7] 마가다의 아자타샤트루 왕은 그가 밧지족을 합병한 직후에 모리야족을 합병했다.[1] 유산모리야족은 기원전 4세기에 칸다굿타 모리야의 지도 아래 마가다 제국에서 권력을 장악한 마우리아 왕조의 조상이다.[2][3] 칸다굿타와 그의 후손들은 마가다 제국을 확장하여 한때 남아시아 대부분을 지배했다.[1] 불교의 후원자였던 칸다굿타의 손자 아소카의 통치 아래, 불교 저술가들은 아소카의 조상 부족인 모리야가 코살라 왕 비두다바의 합병으로 인해 산으로 도망친 샤카의 후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아소카를 부처와 연결시키려 했다.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의 기록에 따르면 모리야와 샤카는 모두 쿠시나라의 말라카로부터 부처님 유물의 일부를 주장한 부족 중 하나였지만 모리야는 샤카와 동시대에 있었고 이는 모리야족이 샤카 공화국이 멸망하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모리야족이 샤카국의 북쪽에 있던 히말라야산맥으로 도망친 샤카족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샤카보다 더 남쪽에 있던 모리야 공화국의 지리적 위치로 반박된다.[1] 정치모리야족은 가나상가로 조직된 크샤트리야 부족이었다.[1] 의회다른 가나상가와 마찬가지로 모리야 공화국의 집권 기관은 라자("지배자"를 의미)라는 칭호를 가진 크샤트리야 장로들의 의회였으며, 라자의 아들은 라자쿠마라("왕자")로 불렸다.[1] 평의회의회는 거의 소집되지 않았고 대신 공화국의 행정은 의회 구성원 중에서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된 의회의 하위 기구인 평의회의 손에 있었다. 평의회는 의회보다 더 자주 열렸고 공화국의 행정을 직접 담당했다.[1] 수반모리야 의회는 라자들 중에서 공화국의 수반을 선출하였고, 수반은 의회의 도움을 받아 행정부를 운영했다.[1] 각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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