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부르고뉴 십자 가 그려진 기
부르고뉴 공작 은 지금의 부르고뉴 지방에 해당하는 부르고뉴 공국 통치자의 신분을 지칭하는 말이다. 부르고뉴 공국 은 843년 베르됭 조약 에 의해 서 프랑크 왕국 에 할양된 이래 손강 의 동쪽 인근을 영지로 하여왔다.
부르고뉴 공작위 는 880년 부르고뉴 왕국 의 카롤링거 가문의 왕 루도비쿠스 3세 와 카를로마누스 2세 와 타 왕족들이 창설했다. 그들은 프랑스의 카를링거 영지 전부를 봉건화했다.
부르고뉴의 리샤르 2세 (정의공 리샤르)는 그의 영주 루도비쿠스 3세 에 의해 처음에는 부르고뉴 후작, 그 후 초대 부르고뉴 공작으로 칙봉받았고 여섯 세속 귀족 중 하나가 되었다.
부르고뉴 공작은 아래 목록에 나열된 백작들의 영주이다.
역대 부르고뉴 공작 목록
보소니 가문
처음으로 부르고뉴 공국의 후작(후일 대공)이 된 인물은 아덴가의 리처드였다. 그의 형 보소는 지방 왕국의 군주였으며 여러 지방 왕국과의 복잡한 혼인 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형의 뒤를 이은 리처드 역시 지방 왕국들과의 혈연에 의해 대공이 되었으며 그의 자손들은 프랑스 왕가와 여러 대에 걸친 혈연 관계를 맺었으며 프랑스 왕가의 봉신으로서 자리잡았다.
정의공 리샤르 (Richard the Justiciar, 880–921)
프랑스 왕 루돌프 (Rudolph, 921–923)
검은 위그 (Hugh the Black, 923–952)
질베르 (Gilbert, 952–956)
로베르 가문
로베르 가문 참고
오통 (Otton, 956–965), 위그 르 그랑 의 아들. 질베르 드 샬롱의 상속녀 샬롱의 리에제아르드 (Liegearde de Chalon)와 결혼.
외드-앙리 (Eudes-Henri, 965–1002), 앙리 1세 르 그랑으로도 불림. 전 공작 오통의 형제. 부르고뉴 소속 백작들에 의해 부르고뉴 공작으로 선출됨.
오통 귀욤 (Othon-Guillaume , 1002–1004), 전 공작 외드-앙리의 수양아들. 부르고뉴 궁정백.
카페 왕가
1004년 부르고뉴는 카페 왕가 에 의해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오토 2세 빌리암은 여전히 부르고뉴 자유국의 통치자였으나 그의 후손은 이브레아 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대 부르고뉴 가문
부르고뉴 가문 은 카페 왕가 의 방계였으며 로베르 2세 의 막내 아들인 로베르 1세가 시조이고 그들의 후손들이 포르투갈 왕국을 세운다.
문장
초상
이름
제위 기간
가문
비고
경건왕 로베르
Robert le Pieux
(972년 3월 27일, 오를레앙 – 1031년 7월 20일, 믈룅 ) 59세
1004년 - 1016년
카페 왕조
로베르 2세 의 막내 아들.
앙리 1세
Henri I
(1008년 5월 4일, ? - 1060년 8월 4일, 비트리-오-로쥬) 52세
1016년 – 1031년
카페 왕조
부르고뉴 공자 앙리의 장남, 로베르 1세의 손자.
선조 로베르 1세
Robert Ier le Vieux (v. 1011년, ? - 1076년 3월 21일, 플뢰리-쉬르-오슈) 65세
1032 – 1076
부르고뉴 가문
로베르 2세 의 막내 아들.
위그 1세 Hugues Ier
(v. 1056년, ? - 29 août 1093년 8월 29일, 클뤼니 ) 37세
1076 – 1079
부르고뉴 가문
부르고뉴 공자 앙리의 장남, 로베르 1세의 손자 그의 동생은 외드.
붉은 머리 외드 1세 Eudes Ier le Roux
(v. 1060년, ? – 1103년 3월 23일, 타르스 ) 43세
1079 – 1103
부르고뉴 가문
위그 1세의 동생
평온공 위그 2세 Hugues II le Pacifique
(v. 1085년, ? - 1143년 2월 6일, ?) 57세
1103 – 1143
부르고뉴 가문
외드 1세의 아들
외드 2세 Eudes II
(1118년, ? - 1162년 6월 27일, ?) 44세
1143 – 1162
부르고뉴 가문
위그 2세의 장남
위그 3세 Hugues III
(1148년, ? - 1192년 8월 25일, 튀르) 44세
1162 – 1192
부르고뉴 가문
외드 2세의 장남
외드 3세 Eudes III
(1166년, ? - 1218년 7월 6일, 리옹 ) 52세
1192년 – 1218년
부르고뉴 가문
위그 3세의 장남
섭정 (1218 – 1228) : 알릭스 드 베르지, 위그 4세의 모친
위그 4세 (Hugues IV)
7월 6일 1218년
부르고뉴 가문
외드 3세의 장남
로베르 2세 (Robert II)
10월 27일 1271년
부르고뉴 가문
위그 4세의 살아남은 자식들 중 장남
위그 5세 (Hugues V)
3월 21일 1306년
부르고뉴 가문
로베르 2세의 장남.
외드 4세 (Eudes IV)
5월 9일 1315년
부르고뉴 가문
로베르 2세의 동생
섭정 (1349 – 1361) : 잔 1세 도베르뉴 여백작 , 필리프 1세의 모친
루브르의 필리프 1세 (Philippe Ier de Rouvres )
4월 3일 1350년
부르고뉴 가문
부르고뉴 공자 필리프의 장남, 외드 4세의 손자
초상
이름
즉위
탄생
비고
2대 부르고뉴 가문 (발루아-부르고뉴 가문)
발루아-부르고뉴 가문 은 카페-부르고뉴 가문 의 뒤를 이어 부르고뉴를 통치한 가문이다.
1477년 이후의 부르고뉴 공작
부르고뉴 대공의 지위는 1700년부터 1706년까지 잠시 동안 에스파냐의 펠리페 5세가 상속하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프랑스의 루이 15세 의 아버지인 황태자 루이를 비롯한 여러 프랑스 왕족이 부르고뉴 대공의 지위를 사용하였다.
프랑스의 부르고뉴 공작
합스부르크의 부르고뉴 공작
합스부르크 왕가 는 중세 에서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에서 많은 지역에 영토를 지배하였다. 또한 프랑스 왕가를 제외한 유럽의 모든 왕가와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1477년 부르고뉴 는 여전히 프랑스 왕가의 영지였으나 부귀공 마리가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와 결혼함으로써 부르고뉴 공국 의 지배권은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귀속되었다. 부르고뉴는 여전히 프랑스의 영토로 인정되었으나 네덜란드 와 같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다른 영지처럼 부르고뉴 역시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실질적인 지배를 받았다. 부르고뉴에 대한 합스부르크의 지배는 1592년 코낵 전쟁 에서 프랑스 가 합스부르크 왕가를 상대로 승리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합스부르크-에스파냐 왕가
필리프 5세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 1555년 – 1598년
필리르 6세 (에스파냐의 펠리페 3세) 1598년 – 1621년
필리프 7세 (에스파냐의 펠리페 4세) 1621년 – 1665년
샤를 3세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3세) 1665년 – 1700년
합스부르크 왕가
샤를 4세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6세) 1713년 – 1740년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가
조제프 (신성로마제국의 요제프 2세) 1780년 – 1790년
레오폴드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트 2세) 1790년 – 1792년
프랑수아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2세) 1792년 – 1795년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