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군주 목록다음은 시칠리아의 군주 목록이다: 노르만족(오트빌가)의 통치, 1071-1198시칠리아 공작위, 1071-1130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는 노르만족의 로베르토 기스카르(루베르투 귀스카르루)를 시칠리아의 공작으로 임명하였다. 귀스카르루는 곧 동생 루제루에게 시칠리아 공작위를 양위하였다.
시칠리아 왕위, 1130–1198루지에로 2세는 대립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와 교황 인노첸시오 2세로부터 1139년에 시칠리아의 왕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시칠리아는 단순한 섬 자체뿐만 아니라 영토가 급속히 확장되어 몰타와 이탈리아 본토의 일부도 그 영토였다.
독일인(호엔슈타우펜가)의 통치, 1194–1266, 1282-1285루제루 2세의 딸 쿠스탄차는 황제 하인리히 6세와 결혼하였다. 하인리히는 굴리엘모 2세의 죽음 이후 계속해서 왕위를 주장하였고 1194년에 노르만 왕가를 시칠리아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쿠라두 2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왕위를 요구했으나 그의 섭정이었던 만프레디가 1258년 왕위를 빼앗았다. 1252년에,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콘라드에 대항하여 잉글랜드 출신의 에드문드에게 왕위를 부여하였고 1265년 다시 그 왕위를 앙주의 샤를에게 주었다. 앙주의 샤를은 1266년 만프레디를 내쫓고 시칠리아의 왕위를 계승한다. 프랑스인(앙주 카페가)의 통치, 1266-1285
앙주의 샤를(나중에 카를루 1세가 됨)이 1266년에 시칠리아를 점령하지만,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으로 인하여 시칠리아 섬의 영토를 잃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영토는 나폴리를 수도로 하는 나폴리 왕국으로 비공식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1282년후 시칠리아의 왕국은 시칠리아 섬 그 자체(아라곤 왕가)과 나폴리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본토(앙주 카페가)로 분리되었다. 아라곤가, 1282–1409아라곤왕 페로 3세는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으로 시칠리아섬을 점령하여 카를루 1세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앙주 카페가와 시칠리아계 바르셀로나가(아라곤 왕가의 분가)는 1302년 칼타벨로타 평화 조약을 맺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탈리아 본토의 왕국(나폴리 왕국)과 구분하기 위해 아라곤 왕가의 시칠리아 왕국을 트리나크리아(Trinacria)라고도 부른다.
트라스타마라가, 1412–1516
스페인의 직접 통치, 1516–1713
사보이아가, 1713–1720오스트리아의 직접 통치, 1720–1735나폴리의 직접 통치, 1735–1816년이후 시칠리아 왕국은 나폴리 왕국과 통합되어 양시칠리아 왕국이 된다.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