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전라도(全羅道)는 전북특별자치도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했던 행정구역으로 호남 지방(湖南地方)에 해당한다. 전주(全州)와 나주(羅州)(나주는 본음 라주에서 두음법칙을 따랐다.)의 앞글자를 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23부제 실시로 전주부, 남원부, 나주부, 제주부로 분할되었다. 지리서북부는 금강 하류를 경계로 충청도와 접하고, 동쪽으로 소백산맥과 섬진강을 경계로 경상도와 접한다. 역사고대천관우의 위치 비정에 따르면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19개 국이 전라도 지역에 걸쳐 있었다고 한다. 노령산맥 이북의 마한 소국들은 1세기 무렵에 백제 온조왕과 다루왕에게 통합되고, 노령산맥 이남에 남아있던 마한세력은 백제의 영향 아래 침미다례라는 연맹을 형성했다. 고구려의 공격으로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백제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가야가 순천, 여수 등지를 침략하고, 남원 일대에 기문 지방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후에 국력을 회복한 백제가 침미다례를 탈환하고 가야세력을 축출하여 전라도의 마한 세력은 완전히 백제에 통합되었다. 백제는 지방행정단위인 5방(方)중에 현재의 전라북도 지역에 고부군을 치소로 중방(中方), 전라남도 지역에 장성을 중심으로 남방(南方)을 설치하였다. 백제 무왕이 익산을 천도지로 선정하고 미륵사를 창건했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 영토에는 당나라의 웅진도독부가 설치되고, 현 전라도 지방에 6개 주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일어난 백제 부흥운동과 나당전쟁으로 인해 웅진도독부의 행정 구역은 제구실을 못했으며, 신라는 웅진도독부를 무시하고 지금의 나주를 치소로 발라주(發羅州)를 설치하였다.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신라는 685년 경에 전국을 9주로 정비하면서 발라주의 치소를 지금의 광주로 이전하면서 무진주로 개칭하고, 전북지역에는 완산주가 설치되었다. 완산주에는 10개의 군, 31개의 현, 그리고 남원경이 설치되었며, 무진주에는 14개의 군, 44개의 현이 있었다. 757년에는 완산주를 전주(全州), 무진주를 무주(武州)로 고쳤다.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신라가 내분 등으로 혼란에 빠지자 각지에서는 호족 세력이 성장하였는데 892년에 견훤이 무진주에서 성장하여 완산주를 석권, 900년에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03년에는 나주를 중심으로 서남부 해안 지방을 왕건이 손에 넣어 후고구려의 영토로 삼기도 했다. 936년에 고려에 의해 후백제가 멸망하고 현 전라도 지방은 고려에 통합됐다. 고려고려 초기에 12목이 설치되면서 전라도 지역에는 전주목(全州牧), 나주목(羅州牧), 승주목(昇州牧 : 순천)이 설치되었다. 태조 왕건은 전라남도 나주 출신 혜종에게 제 2대 왕위를 물려줬으며 995년에 성종은 전라북도 일대를 강남도(江南道), 전라남도 일대를 해양도(海陽道)로 정하였으며 1018년에는 현종이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 전주와 나주의 첫글자를 딴 전라주도(全羅州道)를 설치하여 전라도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였다. 전라도는 2목(牧), 2부(府), 18군(郡), 82현(縣)을 관할하였다. 조선조선 시대에도 전라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본관인 전라북도 전주를 한양, 개성과 더불어 3경으로 승격하였으며 태종 이방원은 전주에 경기전을 지어 선조들을 모셨다. 또한 태종 9년인 1409년에 전라도 관찰사 윤향(尹向)의 건의로 속현과 향·소·부곡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폐지되었다. 1645년(인조 23년)에 나주에서 향리가 목사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주목을 금성현(錦城縣)으로 강등하고 나주대신 남원을 따서 전남도(全南道)라 하였다. 1654년(효종 5년)에 금성현은 나주목으로, 전남도는 전라도로 복구되었다. 그러나 1년 후 1655년 나주에서 전패(殿牌)가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 다시 금성현으로 강등되고 전남도가 되었다. 광남도(光南道) 등으로 개칭했다가 되돌렸다. 1728년(영조 4년)에는 이인좌의 난(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전주 이씨 임영대군 후손의 역모 사건)이 일어나자 나주목이 또다시 현으로 강등되고 광주를 따서 전광도(全光道)로 변경되기도 했으나 1737년에 곧 다시 전라도로 돌아왔다. 1895년에 23부제로 행정구역 제도가 바뀜에 따라 전주부, 남원부, 나주부, 제주부로 분리(금산군은 공주부에 편입되었다.)되어 전라도는 폐지되었다. 동학 농민 혁명과 남한 대토벌 작전 때 조선군과 일본 제국군에 의해 전라도 인민들이 학살을 당하여 세력이 약화되었다.[1][2] 행정 구역고려고려사 지리지를 기준으로 전라도는 2목, 2부, 18군, 82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경국대전》에서 전라도의 관할로 1부 3목 4도호부 12군 37현을 규정하고 있으며, 《속대전》에서는 전주 부윤이 전라도 관찰사를 겸임한다고 규정하였다. 1895년 23부제가 시행되기 직전에는 1부 4목 7도호부 11군 33현으로 변화되었다.
언어같이 보기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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