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와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리쓰메이칸 대학을 중퇴한 뒤 사회인 야구팀인 쓰쓰나카 셀룰로이드를 거쳐 1949년 도큐 플라이어스에 입단했다. 그해 9월 25일 한큐 브레이브스전(고라쿠엔 구장)에서 첫 승리 투수가 됐고 프로 2년차인 1950년에 23승 23패, 207개의 탈삼진으로 리그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다.[1] 1953년에도 시즌 180개의 탈삼진으로 두 번째의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다.[2] ‘고마자와의 난폭자’(駒沢の暴れん坊)라고 불렸던 시절의 플라이어스에서 팀내 중심적 투수로 활약하여 ‘덴노’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고(한편으로 1955년과 1956년에 사와후지 미쓰로 이후의 리그 연속 최다 패전 투수를 기록) 1954년에는 35이닝 연속 무실점[3]을 기록했다. 1959년에는 10년 선수 제도로 니시테쓰 라이온스로 이적하여 원포인트 릴리프로서의 활약이 기대됐으나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학창 시절부터 부업으로 기업에 진출했고, 은퇴 후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한때는 일본 교육 TV의 해설자를 맡고 있었지만, 1975년에 에토 신이치 선수 겸임 감독의 초빙으로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 1군 투수 코치로 부임했다.[4] 니시테쓰 시절 이후 팀을 A클래스에 진입하는 결과를 남겼지만 1년 만에 코치직에서 물러났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