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농구(韓國女子프로籠球, 영어: Women's Korean basketball League, 약칭: WKBL)는 한국여자농구연맹이 주관하는 대한민국의 여자 프로 농구 리그이다. 여자 실업 농구를 확장하여 1997년 2월 24일에 설립되었고, 정식 출범은 1998년에 이루어졌다.
1998년 여름리그를 시작으로 1년에 두 차례씩 겨울리그와 여름리그를 운영했었으나, 2007-08 시즌부터는 단일리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도 운영 중이다.
처음에 다섯 개 팀으로 운영되던 리그는 2000년 4월 금호생명(현 BNK)이 농구단을 창단하면서 현재 여섯 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1년 여름리그부터는 연고지 제도가 도입되었다. 한국여자프로농구는 대한민국의 다른 프로스포츠 리그들과 달리 경쟁이 치열한 대도시보다 중소 도시들을 연고지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출범 배경
1960년대에 인기나 수준 면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여자농구는 불세출의 스타플레이어 박신자 선수가 코트를 떠나면서 갑작스레 퇴색하기 시작했다.[1] 그럼에도 1980년대 초까지 여자농구는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실력으로 남자 농구에 비해 더 인기가 더 높았다. 하지만,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농구가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그 상황은 역전되었고,[2]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자 농구는 급락하기 시작했다.[3][4]
이에 여자 농구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규모에 비해 13개로 많았던 실업 팀의 구조 조정부터 시작해 갈수록 입지가 줄어드는 여자 농구의 입지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미프로 형태로 리그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업 측은 급락한 여자 농구에 굳이 돈을 쓸 필요는 없었다고 여겼고, 선수 입장에서도 굳이 안정적인 직장을 잃어가면서 프로 선수가 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남자 농구의 경우, 1990년대에 농구대잔치의 엄청난 인기로 인해 기업 측에서도 돈이 된다고 뛰어들었고, 선수들도 실업 팀 급여보다 더 많은 돈을 원했던 상황이었지만, 여자 농구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움직임은 있었지만 계속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한 상황 속에 찾아온 1997년 외환위기는 여자 농구의 프로화를 촉진시켰다.[5] 13개나 달하던 팀이 경제 위기로 인해 순식간에 5개로 줄어들면서 이제는 프로화를 통해 이슈를 부각시키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었다.[6][7] 그래서 지지부진하던 여자 농구의 프로화 작업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1 2015-2016 시즌 당시 정규 시즌 준우승을 차지한 팀은 부천 KEB하나은행이었다. 하지만 당시 부천 KEB하나은행 소속으로 뛰던 미국 출신의 농구 선수인 첼시 리(Chelsey Lee)가 자신의 혈통을 한국계로 속인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여자농구연맹은 첼시 리의 기록을 삭제하고 영구 제명했으며 부천 KEB하나은행의 2015-2016 시즌 기록을 무효 처리했다. 또한 부천 KEB하나은행에 포스트시즌 준우승 상금 4,500만 원을 환수하라는 징계 조치를 내렸고, 드래프트 순위에서 최하위 지명권을 부여했다.
스타스포츠의 WKBL GAME(모델명 BB366-25)을 공인구로 사용하고 있다. 중간에 흰색이 섞여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자부가 사용하는 7호 사이즈 공에 비하여 크기가 더 작고 가벼운 6호 사이즈를 사용한다.[9] 한편, WKBL 올스타전의 3점슛 대회에서는 2점짜리 컬러볼도 사용한다.